18대 대통령 선거일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언론이 다루는 쟁점들도 몇 가지로 좁혀지고 있는 양상이다. 야권의 대박근혜 전선에서는 그의 역사관을 둘러싼 논란과 ‘정수장학회’ 이슈가, 그리고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 사이의 단일화 문제와 ‘정당정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연일 대두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통령 선거의 쟁점들이 실제로 우리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인 노동자, 서민의 삶을 결정짓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탈핵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본래 무언가를 주장한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을 수반하는 일. 이번 대선의 유권자인 노동자들은 여지 없이 자신들의 삶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슈들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부르주아 정치 집단의 ‘쇼'를 멍하니 ‘구경'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주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걸까?
언론노조 총파업 이후 더욱 극심하게 황색 저널리즘에 가까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MBC, 언제나 극우 정치세력과 자본가의 정치권력 수권을 위해 지면을 복무해온 조선일보야 그렇다치더라도 대선이라는 거대한 격변의 정국에서 생산적인 정치 담론의 형성을 위해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할 소위 ‘진보 언론'마저 우왕좌왕하는 형국이다.
지난 10월 24일 민주개혁진영의 원로들이 후보단일화와 정권교체를 위한 ‘큰 판'을 짜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가 그것이다. 이 자리의 원로들은 ‘단일화 만능론'을 경계하면서도 ‘의제를 통한 단일화'를 주문했고, 적어도 11월말 후보등록일 전까지는 단일화를 이루자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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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10월 24일자 | ||
이에 언론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동아일보는 10월 24일자 사설 <安 후보, 박근혜 아니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나>에서 ‘원탁회의'를 모조리 ‘종북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안보에 있어서만큼은 ‘보수'임을 자처했던 안철수가 여기에 동참하면 저 ‘종북세력'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명색이 일간 신문이 야권의 후보 단일화를 저지하기 위해 수준 낮은 색깔론까지 동원하는 형국이다.
한겨레는 10월 26일자 신문 사설 <문-안 후보, ‘원탁회의’ 권고 무겁게 받아들여야>을 통해 강력하고도 비장하게 두 세력이 후보 단일화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그것이 사회 진보를 향한 유일무이한 길이라는 것은 이미 이 논평의 암묵적 전제다. 지난 해 우리가 사회적인 담론에서 마치 ‘반MB’라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처럼 ‘후보 단일화'는 ‘반MB’를 위한 절대적인 통과 전략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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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10월 26일자 사설 | ||
경향신문 역시 10월 24일자 사설 <후보 단일화, 가치와 정책 공유가 바탕 돼야>을 통해 문재인과 안철수의 후보 단일화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조건에 대해 밝힌다. 다만 사설의 두 단락에 걸쳐 후보 단일화에 대한 우려와 유보적인 관점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향은 한겨레보다는 더 진일보한 관점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주요하게 다뤄지는 쟁점들이 아니라 비정규직, 정리해고, 핵발전, 한미FTA와 같은 사회 구조적인 이슈에 있어서 불철저하고 피상적인 겉핥기 보도의 태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들이 야권 후보들에 대해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는 이번 대선에서도 여전한 듯하다. 선거 시기 이전까지 전 사회적으로 제기되었던 비정규직 양산의 문제라든지 정리해고의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별 다른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권 자체가 이전투구를 중심으로 정치적 쟁투를 잇다보니 이슈 재생산에도 응당 한계가 있으리라.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여당 후보인 박근혜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나, 무소속 안철수 후보나 저마다 그리 다르지 않은 입장과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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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10월 24일자 사설 | ||
물론 야권의 두 후보가 적어도 쌍용차 해고노동자 대한문 분향소나 울산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농성 현장에 들러 얼굴 도장을 찍었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다른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후보가 실제 김대중 정권 시절 신설된 정리해고제나 노무현 정권 시절 개악된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어떤 식의 구체적인 입장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분석이나 비평도 없다.
문제는 이런 식의 언론 보도의 한계가 결국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를 대선의 주요한 쟁점으로 대두시키지 못하고, 2013년 이후 한국사회의 설계도를 그려나감에 있어서 배제되고 빼앗긴 구성원들을 다시 또 사회 담론의 영역에서 배제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 정치 질서의 수다한 이전투구 소식들을 주요하게 다룸으로써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계급투쟁’의 장을 (의도치 않게)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연 진보가 무엇이냐’고 되물었을때 우리는 수백가지의 답을 들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늘날의 ‘진보'란 두루뭉수리한 뉘앙스 혹은 제스츄어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언론’이 사회 모순과 갈등의 첨예한 영역으로 담론이 확장될 수 있도록 날카로운 비평의 펜대를 놓는다면, 소위 ‘진보 언론'은 고작해야 민주당식 땜빵 개혁론의 상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식의 나이브한 개혁노선으로 ‘진보’-이미지 메이킹이 가능한 시절이 있었지만 오늘날 그것이 가당키나 한가? 황색 저널리즘 수준으로 전락한 몇몇 언론들보다 좀 더 상식적이라는 이유로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다 한다고 얘기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를테면 유권자들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곳에 가서 사진 한 장 남기고 돌아오는 대선 후보들의 포토제닉한 ‘제스추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주마간산식 캡션 보도가 아닌 역사적이고 심층적인 관점을 지닌 ‘비평'적 보도가 필요하다. 그런 식의 정치적인 담론 지형이 형성되어야 대선 정국의 논쟁들 역시 조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한 쟁점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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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6일 <미디어스> 기고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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