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나는 고교시절의 수학여행 이후 처음으로 경주엘 갔었다. 그곳에서 열린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KTX에 올라탔다. 그 열차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로만 가득 찬 신기한 열차였다. 서울에서 올 하객들을 위해 통째로 빌린 모양이었다. 몇 년 만에 보는 동기, 후배들, 처음 본 신부 측 사람들 모두 번듯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나는 달랑 티셔츠에 청바지, 싸구려 운동화, 그리고 작은 우산뿐이었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잘도 살아왔건만 경주로 내려가는 내내 내 처지가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다. 바보 같은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동대구역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차창 너머에 펼쳐진 초록 들판의 풍경에 간신히 몰입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나는 기성세대가 겪는 온갖 풍파, 불화들, 권태로운 표정을 보며, 그리고 그네들이 스스로 희생과 단념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결정들에 대해 후회의 말을 뱉는 걸 들으며 그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지속되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나는 여전히도 고졸이다.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으며, 통장 잔액은 매일 0원을 향해 달린다. 내가 별다를 것 없이 세속적인 인간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순간마다 추락하는 내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두려움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자신이 끊임없이 왜소해지는 걸 느끼지 않던가.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밥은 굶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서울에 돌아와 소문난 감자탕 집엘 갔다. 제각각 어리바리한 신입사원, 앞날이 막막한 대학원생, 비영리단체 활동을 마치고 곧 다른 직장에 출근할 직장인, 영화란 걸 한답시고 아직도 빌빌거리며 대학에 다니는 답답한 놈인 우리들은 소주를 마시며 각자가 지닌 불안과 초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사회초년생 친구는 월요일이 되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삶이 끔찍하게 싫다고 했다. 자신이 마주한 더러운 꼴들에 대해서 나지막이 말하면서 말이다.
결혼한 내 친구는 나와 대학 동기로 이라크전쟁 반대시위에 가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함께 활동했었다. 우리는 우리가 알던 세계가 어딘가 거짓투성이임을, 그리고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에게는 더더욱 착취를 강요하고 있음을 느끼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 환희와 격정, 슬픔, 고독, 불안,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종종 윗세대 어른들이 품는 그런 얄궂은 낭만에 빠지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느낀 어떤 두려움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언젠가 나는 기성세대가 겪는 온갖 풍파, 불화들, 권태로운 표정을 보며, 그리고 그네들이 스스로 희생과 단념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결정들에 대해 후회의 말을 뱉는 걸 들으며 그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지속되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나는 여전히도 고졸이다.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으며, 통장 잔액은 매일 0원을 향해 달린다. 내가 별다를 것 없이 세속적인 인간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순간마다 추락하는 내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두려움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자신이 끊임없이 왜소해지는 걸 느끼지 않던가.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밥은 굶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서울에 돌아와 소문난 감자탕 집엘 갔다. 제각각 어리바리한 신입사원, 앞날이 막막한 대학원생, 비영리단체 활동을 마치고 곧 다른 직장에 출근할 직장인, 영화란 걸 한답시고 아직도 빌빌거리며 대학에 다니는 답답한 놈인 우리들은 소주를 마시며 각자가 지닌 불안과 초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사회초년생 친구는 월요일이 되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삶이 끔찍하게 싫다고 했다. 자신이 마주한 더러운 꼴들에 대해서 나지막이 말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나는 도심 한복판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감을 내뿜는 황당무계한 극우 인종주의 기자회견을 목격했다. 세종로 곳곳마다 “종북 빨갱이 척결”을 외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었고, 새로 세워진 서울시청의 쓰나미와 같은 형상은 우리를 모두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이틀 만에 찾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에선 두 죽음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6월27일에는 미국계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보워터코리아의 한 해고노동자의 아내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신문지상에서 신나게 임원 감축 등을 통해 경영난을 극복했다며 상찬했던 바로 그 회사였다. 또 당일 아침에는 한 택시운전사가 사장과의 면담 끝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분신,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아침 어느 신문도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분향소 앞에서 듣는 죽음의 전갈들이 무기력한 마음에 빠지게 만들었다. 세상 모든 풍경이 폐허처럼 다가왔다.
분향소 앞에서 마침 꽃다지의 공연이 있었다. 도심에서 울린 ‘노래의 꿈’들은 내게 상실된 용기를 되찾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두려움을 넘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말이다. 공연이 끝나도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모두 험악하고 두려운 일들뿐인데 오직 그 외딴섬 같은 자리만이 우리들의 갈 길을 안내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 ‘노래의 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향소 앞에서 마침 꽃다지의 공연이 있었다. 도심에서 울린 ‘노래의 꿈’들은 내게 상실된 용기를 되찾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두려움을 넘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말이다. 공연이 끝나도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모두 험악하고 두려운 일들뿐인데 오직 그 외딴섬 같은 자리만이 우리들의 갈 길을 안내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 ‘노래의 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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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5일자 <경향신문> 칼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042109145&code=990100&s_code=ao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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