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이 거대한 표면! 영화

어제 학교 대시사실에서 우리들이 기획하고 저작권 계약에, 대여와 홍보까지 해내어 치뤄낸 상영회 행사에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았다. 학내에서 진행한 이 기획에 대한 모든 소회는 다른 자리를 통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거기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결심하게 된 계기와 용기들이 담겨져있다. 지금껏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누군가 이야기하는 걸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고작해야 동기 재형이와 술을 마실때 이따금 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을 뿐이다. 재형이는 우리학교에 입학하기 하루 전에 이 영화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고, 박광수 선생님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어릴때 TV 혹은 비디오를 통해 이 영화를 보고,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서는 그저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이 영화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해야할 지 모르겠다. 다만 명확한 것은, 이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상영되어야할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점, 그리고 매번 우리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봐야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는 영화가 고전으로서 남겨져야할 때 가지고 있어야하는 에너지들이 내재되어있다. 이 에너지의 생김새와 동학에 대해 딱히 무어라고 묘사하긴 어렵다. 다만 이것이 가히 '영화적'인 에너지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표면을 생각했다. 단 한번도 내러티브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내 집중할 수 있었고, 내내 두 손을 꽉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보기드문 집중의 순간이었다. 나도 사실은 이 영화가 '전태일'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서 틀자고 했던 것이지, 다른 무엇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상영회와 도서전, 매체 발간으로 이어지는 이 '기획'을 하나의 사업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주체적으로 맡아서 진행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기억과 경험으로 남겨지느냐가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봤을때 예상치 못한 마주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거대한 표면. 역사나 의의만으로 명명할 수 없는 거대한 표면이 말이다. 이 표면은 어떤 강렬한 집단적 욕망과 연결되어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을 보라. 당대의 충무로 영화 조연급들을 비롯해 연극계의 명배우들, 그리고 무명의 배우들이 총집합해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전체'를 위한 자신을 발하며, 또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한 전체가 되기도 한다. 그/녀들 하나하나의 눈동자, 세트로 지어진 평화시장의 공간, 그러니까 그 공간의 벽면들, 필름의 입자, 카메라의 끊임없는 무빙까지. 하나하나가 모아져 표면을 이룬다. 거대한 표면을 말이다. 잠시라도 이야기 안에 이입해들어가는 지점이 발생할라치면 그 사이 표면적 요소가 개입해들어와 표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다. 그만큼 표면의 장력이 강력한 것이다. 완전히 표면 자체를 감지하며 볼 수 있는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사례까 아닐까. 

이 하나의 죽음. 일찍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비밀스럽게 호명되었고, 8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자기 이름을 쟁취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죽음. 그 죽음을 대단히 늦게, 완전히 사후적으로 '기억'하게 된, 현실에서는 전혀,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던 무수한 대학생들, 노동자들. 이 영화의 제작자라고 호명되는 90년대 중반 당대의 제야 사회운동단체들과 학생들, 시민들 중 그 누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에서 그 이름모를 노동자의 죽음을 목격했겠는가. 다만 '언술'되고 기록된 글자들로부터 이미지를 상상하고 기억을 재구성할 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이 거룩한 죽음이 목적하고자 하던 바가 현실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집단적 죄의식이 온전히 죽음의 재현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전화된다. 대체 왜, 그토록 강렬히, 이 영화를 만들어내려 했던가. 부족한 제작비를 사상 초유의 시민 모금으로 모아낼 생각을 했단 말인가. 이 강렬한 현현이, 이 영화의 표면 장력을 이루는 모든 배우들,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카메라, 그리고 그 카메라 뒤에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며 대기상태의 뜨거운 열정을 유지하고 있던 스탭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요컨대 이 영화를 '영화 전태일'이라는 영화가 아니라, 일반화된 고유명사 '전태일'로부터 시작된 역사적 패배자들의 영화적 열망으로 기억한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이 영화를 볼 수 있다. 

대중운동은 완전히 실각되었다. 91년 5월의 열사정국이 허무한 도덕 소동으로 끝나고난 후, 억압적 법치국가 사회는 또 다른 전태일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노동자운동은 점점 위기에 몰리고 있었고 학생운동은 "잃어버린 10년" 역사를 개시했다. 모두가 패배자였다. 그 후로 15년간 무수히 패배해왔음을 영화가 만들어진지 15년 후에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현이고 욕망이다. 그리고 응시이다. 마지막 장면 두 인물의 뜨거운 응시는 잊을 수가 없다. 하나는 불에 타는 전태일, 아니 홍경인의 응시이다. 대체 어느 배우가, 앞으로, 제 몸에 불을 질러 열연할 수 있을까. 대체 누가? 그리고 대체 누가, 어느 촬영감독이 그 불에 타오르는 배우를 앞에 두고 무수히 고속촬영 버튼을 누르며 카메라의 포커스를 불타오르는 신체 앞에 맞출 수 있단 말인가. 또 그 어떤 연출자가 배우에게 저것을 시키고 응시하며 영화적 순간이 표면 안에 담겨지기를 기다릴 수 있겠단 말인가. 우리를 상상 불능의 지점으로 이끈다. 마지막 '늙은' 문성근의 응시는 또 어떠한가. 아마도 에필로그의 그 장면은 1996년 당대라는 설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문성근이 다시, 평화상가 앞에 와 지친 모습으로 어느 의자에 앉아 말한다. 입으로든, 눈으로든. 그리고 몽타주처럼 이어지는 평화시장의 풍경들. 그 어느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삻과 죽음>(이 제목은 나중에 '전태일 평전'이라는으로 고쳐져서 일시적으로 편집했던 문구들을 복원해 다시 출간된다. 그런데 그 책을 들고 있는 저 멀리의 청년이 누구인가. 하나의 유령. 죽었지만 죽지 않은 인간. 우리를 응시하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간. 그리고 영원히, 프리즈프레임. 내가 본 것은 '전태일'에 대한 영화가 아니었다. 패배한 대중운동이 저항적이고 전복적 죽음에 대해 영원히 재현코자하는 집단적 욕망을 드러낸 팔팔 끓는 온도의 뜨거운, 거대한 표면이었다. 그 순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태일이 떠올라서가 아니었다. 이 패배가 참혹하고, 또 그 패배를 뜨겁게 곱씨어내려했던 당대의 뜨거운 사람들 때문이었다. 96년의 그 뜨거운 열정에 모든 애정을 보낸다. 나는 지금 그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동시에 오늘이기도 하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덧글

  • mezzy 2010/11/16 16:09 # 삭제

    안녕하세요. 방명록이 없어서 여기에 씁니다. 트램폴린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네요. 쓰신 글들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굳이 흔적을 남기고 가요. 저는 늦게 입대해 지금은 해군에 있지만 전까지 삼청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고 지금도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어요. 포토로그를 잠시 보니 왠지 한 동네 주민이신 것 같아 더 반가웠습니다. 몇 년동안 개인 웹사이트를 굴리다가 블로그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확실히 이쪽 바닥이 멋진 사람들이 많네요. 서로 교류하며 지내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 관련 일을 하시나요?
  • 명교 2010/11/16 23:48 #

    저는 청운동 살아요. 삼청동이 경복궁의 동쪽이면, 여긴 서쪽이죠. 반갑네요^^ 영화 일이라기보다는 지금은한예종 다니면서 연출이랑 촬영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 뭔가 새로운 영화, 다른 영화를 하고 싶은데 고민이 많아요. 밥 잘 벌어먹을 수 있을 일은 아니죠^^;;
  • mezzy 2010/11/17 12:13 # 삭제

    부암동 부근이네요. 내년 6월에 전역인데 후에 부암동이나 효자동 쪽에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동네도 요새 집값이 많이 올라서... 혼자 사시나요? 사진으로 얼핏 봐선 집이 굉장히 멋져 보이던데요. ㅎ... 저는 디자인, 문화기획 관련 일을 입대 전까지 했었는데 요사이 한계를 많이 느껴서 학교를 다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들어가려는 곳이 공교롭게도 한예종 건축과... ㅋㅋㅋ 한예종에 간디학교 후배가 제법 있는데 영화 쪽이시면 혹시 용우나 재승이 아시나요? 인원이 적어서 대개 다 알고 지내는 것 같던데.
  • 명교 2010/11/19 18:57 # 삭제

    네 부암동 아래 청운동이에요 ㅎ 부암동, 효자동 다 좋죠. 요즘 서울에서 가장 살기좋은 동네가 아닐까 싶어요. 인사동도 가깝고, 뒤에 북한산도 있고.. 또 근처에 명박이가 살아서 삶의 긴장감도 유지할수있어요. 건축과 오시면 뵐수있겠네요. 내년되어도 전 3학년이거든요. 용우라는 분은 모르겠고, 재승... 노재승, 염재승 이런분들이 있는건 알아요^^ 염재승씨는 잘은 모르구요.
  • khanna 2010/12/15 13:09 # 삭제

    영화를 보고 관련자료와 글들을 찾던 중 찾아오게 되었습니다~링크 가져갈게요^^